날이 많이 쌀쌀해진 요즘, 다들 몸 건강히 지내고 있냐옹?
10월의 소식은 성매매방지법 20년을 맞아
전국연대와 여성신문이 함께 기획 연재한 칼럼으로 시작한다냥!
재밌게 읽어달라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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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럼] 여성신문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가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칼럼을 연재합니다. 성매매는 여성폭력이며 여성인권의 문제라는 데 주목해 반성매매 운동의 역사와 과제를 다룹니다. <편집자 주>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① 지속 가능한 성평등한 사회는 성착취와 함께 할 수 없다
법 제정과 시행, 법 제도의 정착과 정책적 방향은 젠더폭력에 제대로 대응하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젠더권력관계를 바꿔내는 운동이고, 반성매매·성착취·인신매매 근절 활동이 민주 사회,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기반이다. 모든 영역이 빠른 속도로 디지털 산업으로 변화하는 현재, 여성/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성 산업 착취 구조의 카르텔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이 새로운 형태의 성착취 산업을 잠식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권, 행복추구권을 자유시장주의로 파편화하면서 구조를 가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 지구적 성착취에 대응해야 한다.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② ‘성매매는 자발적 선택’이란 편견...더 위험해진 성적 착취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고 20년,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전환의 시기를 통과하며 성매매 문제는 기술발전이 가져온 생활양식의 변화에 휘말리고 있다.…실제 세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성매매’였던 현실이,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네트워킹을 통한 초연결사회에 그대로 탑재된 것이다.…성매매업소의 변화 양상보다 더 한결같은 현상은 바로 여성들이 경험하는 ‘법’과 그 ‘법’을 시행하는 사회의 메시지이다. 아직도 법의 메시지는 성매매 알선업자와 성구매자의 행위를 차단하고,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상황을 종식시키려 한다는 ‘당위’조차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③ ‘디스코 팡팡’부터 ‘지인능욕’까지...아동·청소년 성착취 방조한 기업과 국가
‘성적 그루밍’이란 성범죄자들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신뢰를 형성한 후 성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을 말한다(윤정숙, 2020, 한국성인권교육연구소). 성적 그루밍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온라인이다. 10대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에서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해 지역과 공간을 넘어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하며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 채팅앱, SNS, 게임 등 다양한 공간을 통해 청소년들이 소통할 때 청소년들을 기다리는 성착취범들이 있다. 청소년들을 물색하고 친근감을 주어 신뢰를 형성한 후 고민과 어려움을 나누고 성적인 대화를 유도한 후 관계를 비밀로 만들고 더 성적인 관계를 유도한다. 이후 가스라이팅을 통해 억압하고 성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때 성착취범들이 많이 하는 말이 ‘연인’이다. 연인이 됐으니 연인이 요구하는 신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해 보내게 한다. 이후 이 사진과 영상은 또 다른 이유가 돼 관계를 지속하게 만든다. “N번방”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④ 성매매하지 않을 권리·탈성매매할 권리, 국가가 지원하라
자본이 자본을 집어삼키는 잇속 자본의 논리로 성매매집결지가 폐쇄되는 와중에, 한국 반성매매운동은 성매매집결지 폐쇄가 ‘여성인권’ 관점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물길의 방향을 바꾸어내었다. 반성매매운동의 ‘성매매집결지 폐쇄운동’은 과거 100년 간 성매매집결지 영업을 관리하고 묵인한 뼈아픈 역사와 그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내는 사회적 실천이자 변혁운동이다. 이는 사회정의 관점에서 여성 착취로 기득권을 누리는 업주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천부인권의 힘을 발휘해 여성들에게 (가능한 한) 전폭적인 지원을 수행함으로써 성매매집결지를 해체하고, 종국에는 성매매 여성 당사자와 지역주민을 포함한 모두에게 사람을 사고파는 성착취 공간이 아닌 평화롭고 새로운 공간으로 ‘일상을 되돌려주는’ 여성운동이다.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⑤ 성매매방지법 20년, 이제는 성매매여성 비범죄화
페미니즘 백래시의 시대에 성매매피해자를 지원하는 모든 현장단체들이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로 모인 것은 미완의 성매매방지법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20년 전 여성운동은 한마음, 한뜻으로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을 요구했고 성착취 산업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정부는 가장 어려운 과제였던 성매매피해자 지원체계를 구축해 놓았다. 문제는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성매매처벌법이다. 물론 성매매여성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성매매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가장 시급하고 분명한 것은 성매매처벌법을 개정해 성매매여성에 대한 처벌을 멈추는 것이다. 성매매처벌법 개정으로 성매매여성이 처벌되지 않는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 성착취 없는 미래의 문, 바로 우리가 열 수 있다.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⑥ ‘자발적 성매매’라는 환상...더 교묘해진 착취
성매매 경험 당사자로서 성매매를 반대하는 이유? 그건 너무 단순하다. “내가 경험해 봐서”이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마치 여성을 위하는 것처럼 “성매매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무책임한 말들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를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구분 짓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성매매를 하게 됐는지’, ‘얼마나 피해를 심각하게 당했는지’, ‘얼마나 불행했는지’ 묻고 우리에게 증명하라 요구한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성매매 여성들에게만 ‘진정한 피해자’인지 묻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매매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찾고, 나와 같은 여성들이, 아이들이 생기지 않고 탈성매매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반성매매 활동을 하고 있다.…이제는 구매자, 알선자들이 어떤 가해 행위를 했는지, 얼마나 수익을 벌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그들을 비난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피해를 입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당연히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 건 잘못된 것이고 그 자체가 폭력이라고 말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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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를_무럭무럭_키우는 #조직사업
부설기관 교육부터, 동두천 탐방까지 알찬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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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진행한 부설기관 전체활동가회의에서는 플랫폼C의 박상은 활동가를 모시고 <사회적 참사 후 공익활동가의 고민과 연대>교육을 들었어요.
교육을 듣고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은 단순히 몇몇 개인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눠야할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나눴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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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에는 다함께 동두천에 방문했습니다. 최근 동두천시는 동두천에 있던 낙검자수용소 건물을 개발을 명목으로 철거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국연대도 철거를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에 함께 하고 있는데요. 이 날 부설기관 활동가들은 낙검자수용소 뿐만 아니라 '쇠목 공여지 반환 기념비, 상패동 무연고 묘지, 고 윤금이씨 사건 터, 보산동 클럽거리'도 함께 탐방하며 동두천 투쟁의 역사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해야할지 고민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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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도 부설기관 현방은 계속 됐어요. 보다에서는 12월 말에 미아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기대해주세요! 11월에도 부설기관 현방은 계속됩니다. 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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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_힘은_연대 #연대사업
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동대책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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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여성단체 공동성명서] 동두천시는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철거 중단하고 경기도와 국가는 여성 성착취의 역사가 지속되지 않도록 여성인권평화의 공간으로 보존하라!!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는 정부가 성병 치료를 명분으로 미군 ‘위안부’를 강제로 가둬두던 곳으로 1973년 세워져 1996년 폐쇄된 곳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성매매를 금지한다는 취지로 1961년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 유엔 ‘인신매매 금지 및 성매매 착취 금지 협약’에 가입하였지만 한미 군사동맹과 외화벌이 수단으로 여성들을 이용하고 착취했다. 정부는 성매매가 허용되는 특정지역을 지정하고 애국교육을 통해 성매매를 조장했으며 보건증을 발급해 성매매여성을 관리하고 미군의 ‘안전’을 이유로 낙검자 수용소를 운영했다. 2022년 대법원은 이곳에서 이루어진 강제적인 성병검진, 강제구금, 강제치료는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 행위이며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임을 인정했다. 이는 122명의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국가의 책임을 물은 지 8년 3개월, 이미 목숨을 잃기도 한 수많은 여성들이 국가로부터 위법,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한지 반세기만의 인정이다. 그 긴 세월동안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존엄은 무시되었고 피해자들은 수많은 편견과 낙인에 그대로 노출되며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법원 판결로 기지촌 미군 ‘위안부’제도의 역사적 사실과 국가의 불법행위, 그로 인한 인권 침해가 인정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여성인권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여성억압은 사라져야 하지만 역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공간은 역사를 담고 있다. 비록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가 미군 ‘위안부’ 여성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 담긴 공간이지만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에게는 공간의 보존 자체가 엄중한 경고가 된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 현장이자 국가폭력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공간인 낙검자 수용소 보존을 요구했다. 여성단체와 주민단체들도 여성인권 침해 역사에 대한 기록과 기억, 반성과 성찰을 위해 낙검자 수용소를 여성인권평화공간으로 보존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동두천시는 이러한 요구와 제안, 대화와 숙의 요청도 무시하고 차단한 채 단풍축제를 위한 임시주차장을 만들겠다며 철거를 강행하고 있다. 이는 미군 ‘위안부’ 국가폭력에 대한 부정이자 피해자와 여성들에 대한 또 다른 폭거이다.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폭력은 국가 주도하에 경기도, 동두천시로 이어지는 집행체계를 통해 자행되었다. 때문에 그 상징공간인 낙검자 수용소는 ‘동두천시에 소재한다.’고 해서, ‘동두천시 소유’라고 해서 동두천시만의 자산일 수 없다. 특히 철거문제는 동두천시 독단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동두천시는 막무가내식 철거를 통해 인권 침해의 역사,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의 역사를 지우려하고 있다. 동두천시는 당장 철거를 중단하라.
이제 국가, 경기도, 동두천시 각 책임 주체들이 어떻게 국가폭력으로 인한 피햬를 회복하고 기록⋅기억할 것인지, 국가폭력의 증거공간인 낙검자 수용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함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는 기본이다. 이미 경기도에서는 2020년 「경기도 기지촌여성 생활 실태 및 지원정책연구」 용역을 통해 경기도 내 6개 성병진료소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보존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또한 경기도민 청원 1만 명 이상 달성, 국회 국민동의청원 5만 명 이상 달성을 통해 민의도 확인되었다. 이제 경기도와 국회, 정부가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정부, 국회, 경기도, 동두천시는 모두 국가폭력 책임의 당사자이자 낙검자 수용소보존 책임의 당사자다. 더 이상 책임을 미루거나 방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책임 당사자로서의 책무와 역할을 다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는 보존되어야 한다. 상처받은 역사를 기록하고 치유하기 위해 보존되어야 한다. 여성억압의 역사가 기억될 수 있도록 보존되어야 한다. 우리는 동두천시의 강제 철거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 더 이상 여성들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도록,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 경기도와 동두천시, 국회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착취가 지속되지 않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동두천시는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철거를 당장 중단하라!! 경기도는 국가폭력의 중요한 당사자이고 책임 주체로서 낙검자 수용소 보존에 적극 나서라!! 경기도와 국회는 1만 경기도민과 5만 국민의 청원에 응답하라!! 여성 성착취의 역사가 지속되지 않도록 정부, 국회, 경기도, 동두천시는 책임을 다하라!!
2024년 10월 12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힌국여성의전화,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 품, 전국여성연대, 두레방 쉼터, 경기자주여성연대, 자주통일평화연대 여성본부, 두레방, 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기독여민회,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사)인천여성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진보당 충북도당 성평등위원회,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사)햇살사회복지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수원여성회, 사단법인 수원여성인권돋음, 서울여성노동자회,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사단법인 대구여성인권센터, 하남성폭력상담소, 사단법인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사단법인 여성인권티움,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 인권희망 강강술래, (사)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사)경남여성회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총 35개 여성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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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대는 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동두천에 있는 낙검자 수용소(옛 성병관리소)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성병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강압적으로 감금했던 곳입니다. 그 건물 자체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공모해 여성을 착취한 증거인 셈입니다. 이런 국가폭력의 기록을 현재 동두천시는 개발을 명목으로 철거하려 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굴삭기 닥친 성병 관리소…현장 책임자는 없었다)
전국연대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여성에 대한 착취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해당 건물 철거를 반대하며, 공대위 활동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분들의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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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대에 160명이나 되는 멋진 활동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걸 알고있냥?
매일 쉴틈없이 바쁘게 활동하다보니
활동가들도 서로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냥..(흑흑)
그래서 매달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해보려고 한다냥!
160명을 전부 소개하는 그 날까지! 기대해달라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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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목포에 살며, 목포에서 반성매매활동을 하는 중인 박현경입니다. 요즘에는 새로운 취미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목포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목포를 떠나신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목포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목포를 가장 길게 떠났던 게 아마 3개월? 6개월? 아무튼 1년도 안 돼요. 학교를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하며 잠깐 서울에 살았었지만, 결국 다시 목포로 돌아왔어요. 그렇다고 해서 목포가 저에게 새삼 큰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고, 그저 나고 자란 도시니까 자연스럽게 목포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목포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요.
대학에서의 활동이 반성매매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와 결심으로 반성매매 활동을 하게 되셨나요?
대학 다닐 때 한 활동은 학보사 기자 활동이었어요. 지금은 없어진 조직인데 전대기련(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에서 활동하면서 학교를 좀 오래 다녔고. 하하. 졸업하고서도 잠시 지역 신문사에서 일했어요. 지금 생각나는 건 대학교 2학년 때인데요. 새 학기가 시작할 때 신문 첫 호를 발행하는데, 선배가 어느 날 저에게 칼럼을 맡겼어요. 보통 2학년은 칼럼을 아직 못 쓰는데, 저에게 3월 8일 여성의날에 대한 칼럼을 하루 기한을 주고 써오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아무런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진짜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썼어요.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들로요. 하하. 칼럼 내용이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궁금한데, 그 때 ‘여성의날’의 존재를 처음 알았어요. 그 시기가 목포에서 여성폭력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여러 단체들이 처음 생기고 활동을 시작하던 때예요. 취재하면서 와, 여성만을 생각하며 활동할 수도 있구나. 그걸 처음 알게 됐어요. 보도 단신으로 목포에 처음 여성의전화가 생겼다, 이런 기사도 보도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사회에 대한 얕은 관심과 고민은 계속 이어지던 상황에서 졸업 후에 서울에 잠시 갔다가 다시 목포로 돌아왔는데, 목포는 지역이 좁다 보니까 다 아는 사이거든요. 대학도 2개 뿐이어서 활동을 했으면 다 건너건너 아는 사이에요. 여자 선배들이랑 그래서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성매매 상담소를 하자고 했어요. 그 당시에 목포는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막장 같은 이미지였어요. ‘목포를 거쳐서 흑산도로 끌려가면 끝이다’ 이런 이야기도 많았고요. 선창에도 집결지가 형성돼있었어요. 그래서 오갈데 없는 빚 많은 여성들이 끌려오는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정작 목포에는 피해 상담소가 없는 거예요. 성매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그러니까 성매매 상담소를 열자는 거죠. 그러면서 월급도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하고 싶은 활동인데, 돈도 준다니까 혹했죠. 그런데 활동 시작하고 처음 4년은 국비지원을 못 받아서 정말 어렵게 일했어요. 사람들 후원금으로 겨우 전기세도 내고 그랬어요.
그렇게 상담소를 시작하고 만나게 된 언니들의 삶이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이미 10대부터 다방, 집결지를 모두 경험한 여성들이 너무 많았어요. 가족들에게 폭력을 당한 경우도 너무 많았고, 감금 당한 사례도 많았고요. 그런 증언을 들으며 너무 충격 받았어요.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죠. 무엇보다 언니들이 계속 상담소를 찾아와줬어요. 상담소가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언니들이 계속 찾아오니까 상담소를 계속 할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과정을 오히려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하지도 못 했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오늘부터 반성매매 운동 해야지, 성평등한 세상 만들어야지 결심하고 들어왔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반성매매 운동을 한다고하면 지역 활동가들조차도 편견을 가지고, 왜 그런 활동을 해? 이런 질문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 편견이 섞인 질문을 듣다보니 더더욱 반성매매 운동 열심히 해야지 한 것 같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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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개소식 사진(엄청난 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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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적은 인원으로 처음 상담소를 개소했을 때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법적으로 정해진 인원은 5명이긴 한데, 활동이 어렵다보니 1년 이내로 짧게 있다간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렇게 활동 하고자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계속 상담소가 유지됐어요.
생각나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가, 저희가 예전에 어떤 건물 2층에 상담소를 차린 적이 있는데 그 건물에 있던 장비를 납품하는 가게가 2층까지 쓰고 있었거든요. 그 장비들 한 쪽에 블라인드를 치고 사무공간과 화장실만 두고 상담소로 썼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물품이 잔뜩 보이고, 화장실을 가려면 엄청 좁은 길을 지나서 가야했어요. 그 때 청소년 조건만남 관련해서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데리고 왔었는데, 다음 해에 저희가 그 선생님에게 학교에 상담소 소개를 해달라고 연락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선생님이 완전 정색을 하시면서 그런 곳에 어떻게 학생을 데려가냐고 하는 거예요. 자기는 그런 창고 같은 곳일 줄 몰랐다,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하면서요. 민망함보다도 너무 화났어요. 그 학교에 조건만남 사례가 많다고 전달 받아서 연락한 건데, 우리 시설 열악한 걸 따지다니! 상담 선생님이 이러면 되냐고 우리끼리 엄청 열을 냈던 기억이 나요. 하하.
그래도 다행히 언니들이 우리한테 뭐라고 한 적은 없어요. 다 괜찮다고 해주고. 부품이 많아서 화장실을 가는 길이 엄청나게 좁았는데, 저희가 길이 험해서 위험하다고 하면 다들 괜찮다고 해주셨어요. 그런 상담소였는데도 신뢰하고 와주신 게 정말 감사하죠. 이딴 데를 어떻게 오냐고 화 내지 않고요. 정말 다행이죠.
목포의 경우, 항구도시인데요. 항구도시로서 갖는 성매매 산업의 특성이 있을까요?
목포에는 인근에 해남이 있고, 완도, 진안, 신안이 전부 섬이에요. 그 외에 유인도도 많고요. 예전에는 전국적으로 소개쟁이들이 연결돼서 목포를 거쳐서 혹은 거치지 않더라도 신안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게 끌려가면 여성이 부둣가 근처에만 나와도 업주가 전부 알았대요. 섬 내에 사람들이 전부 업주의 정보망인거에요. 그게 섬이 무서운 이유예요. 그래서 언니들이 목포로 외출 하자고 손님을 꼬셔서 몰래 나오고, 탈출도 그런 식으로 했어요. 안 그러면 혼자 배 자체를 못 탔어요. 그 당시에는 새벽에라도 언니들한테 연락이 오면 그 시간에 섬을 들어갈 수 없으니까 경찰에 바로 전화를 했어요. 언니들은 바로 경찰에게 연락할 수 없지만 저희는 외부인이니까 전화하면 무시할 수 없거든요. 그렇게 경찰과 전화하고, 숙직실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에 바로 구조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비바람이 치면 못 들어가니까 밖에서 대기하기도 하고요. 요즘 달라진 점은 섬끼리 다리가 생겨서 예전처럼 갇혀있지는 않아요. 언니들이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요. 붙박이나 여관바리인 경우도 줄었고, 상담하는 언니들 얘기 들어보면 광주에서도 왔다갔다 한 대요. 덕분에 섬에 고립되는 경우가 많이 줄었어요. 옛날에는 주민등록증도 말소돼서 죽어나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경우는 드물어요.
목포 선창의 경우에는 예전에는 선창하면 아가씨집이라고 부르는 데가 많았어요. 겉으로 보면 일반 상가 건물처럼 보이는데, 이 곳에서 성매매를 했어요. 저희가 선창 집결지 기록집도 만들고 구술작업도 했었는데, 그 때 선창에 19살에 처음 온 언니 말이 하루에 4-50건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언니가 43살이었는데, 25년을 선창에 계셨던 거죠. 지금 40대인 언니들 얘기 들어보면 법이 생기기 전에는 정말 무법천지였대요. 어떤 언니는 낮에는 교복 입고, 저녁에는 다방에서 일했는데 업주가 학교 다니니까 돈을 못 버는 거라고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일 시작했다고 해요.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혹은 그만두고 성매매를 하는 일이 흔했대요. 법이 없으니까요.
첫 상담이 기억나시나요?
그 때는 경찰 조사를 밤 12시 넘어서까지 했어요. 조사가 끝나고 밤에 어두운 길을 언니랑 둘이 걸어가는 데, 손을 잡고 걸어갔던 기억이 나요. 그 언니가 지금은 뭘 하고 사는지도 몰라요. 잘 지내겠거니 믿고 지내요. 상담소는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라 빨리 해결을 도와주고, 빨리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락이 끊어져도 어딘가에서 언니들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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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자의 눈] ‘성매매여성 무죄’ 외친 18년, 남긴 것과 남은 것
뭉치가 올해 성매매방지법 시행 20년을 맞아 첫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9월11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토론회 주제는 ‘당사자 운동을 통해 본 성매매방지법의 성과와 한계’였다. 김영배·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종오·전종덕·정혜경 진보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 ‘창녀’로 낙인찍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일으켜 투쟁을 조직하고 국제 연대를 끌어냈는지 짚었다. 150여 명이 약 4시간 동안 자리를 지킬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토론자로 참가했는데, 토론회라기보단 잔치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뉴스] "몸 파는…" 어린 딸 유치원에 도착한 문자: 누가 텍사스촌 여종사자를 죽음으로 몰았나
지난 9월 22일, 전라도의 한 펜션에서 미아리 텍사스촌 여종사자 A(35)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미아리 텍사스촌은 재개발로 인한 폐쇄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성착취까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A씨처럼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종사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A씨의 죽음에 얽힌 성매매 산업의 착취구조를 지금이라도 따져봐야 하는 이유는 차고넘친다. '편견' 뒤에 던져놓을 문제가 아니다.
[뉴스] [단독] '에이즈 환자' 40대, 청소년 상습 성매매로 구속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감염된 전문직 40대가 모바일 익명 채팅앱을 이용해 청소년들과 '조건만남' 성매매를 해온 사실이 검경의 수사에서 밝혀졌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에이즈로 확진된 십 수 년 전에도 같은 혐의로 처벌 받은 전력이 있는 데다, 최근까지 범행을 지속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뉴스] 법원, 단속 중 성매매 여성 촬영은 위법…"국가배상 책임"
단속 과정에서 경찰이 성매매 여성의 알몸 사진을 찍고 단체대화방에까지 올린 사건에서 법원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 조영기 판사는 17일 성매매 여성 ㄱ씨가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낸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는 ㄱ씨에게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조 판사는 “경찰 합동단속팀으로서 해당 호실에 진입해서 경찰관이 사진을 촬영한 행위와 이후에 단체 카카오톡방에 공유한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뉴스] 민병춘 논산시의원, 강경 성매매 집결지 회복적 해체 촉구
민병춘 충남 논산시의원(민주당, 취암)이 16일 ‘5분 발언’을 통해 강경읍 성매매 집결지 회복적 해체와 종사자 자립 지원을 강력히 촉구했다.…민의원은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전국 성매매 집결지 현황’ 자료를 제시하며 전국 45곳 중 28곳은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회복적 해체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회복적 해체란 “일괄적 철거방식이 아니라 성매매 집결지를 역사적·시대적 맥락을 이해하고, 공간 재정비와 함께 성매매 피해자들의 자활을 돕는 것”이라고 그 의미도 설명했다.
[뉴스] 대법 ″성매매 업주 범죄 수익 총액에 직원 급여까지 별도 추징 적법″
성매매 업주가 얻은 범죄 수익 총액과 함께 업소 직원들이 받은 급여까지 별도로 추징한 판결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 범죄 수익을 초과하는 추징이 이뤄지게 되지만, 성매매 업주는 성매매처벌법, 직원들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근거로 추징하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뉴스] '열도의 소녀들' 광고…일본 여성 80여 명 원정 성매매 알선 업주 징역 2년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이경선 판사는 오늘(29일) 성매매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성매매 업주 윤 모 씨에게 징역 2년에 벌금 5천만 원, 추징 2억8천여만 원을 선고했습니다.…한국인인 윤 씨와 박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일본인 여성 80여 명을 국내로 입국시켜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들은 성매매 사이트에 '열도의 소녀들'이라는 제목으로 광고 글을 올렸으며 서울과 경기 일대 호텔 등에서 성매매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기획칼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 '깨끗한 몸'을 미군에 제공하기 위했던 '건물'은 왜 존재해야 하나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와 함께 의정부시 빼뻘마을에 또 하나 위기의 건물이 있다. 38년동안 기지촌여성들을 지원하며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두레방 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과거 성병관리소로 가기 직전, 기지촌 여성들이 1주일에 2번 성병검진을 했던 보건소 건물로, 2000년부터 두레방이 의정부시로부터 임대하여 2024년까지 24년동안 지켜 온 건물이다. 그런데 20024년 1월, 의정부시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고, 6월까지 건물을 비우라고 했으나, 의정부시장과의 면담으로 2025년 6월까지 유예된 상태이다. 두레방은 이 건물을 지키기 위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의정부시는 침묵하고 있다.
[기획칼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 개발이 '몽키하우스'라 불린 성병관리소의 '기억'을 파괴된다
동두천 소요산 성병관리소는 국가가 여성/시민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지이자 과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보여주는 준거틀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혹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지이기도 하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붙들고 '이미'와 '아직' 사이의 작은 공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힘을 내본다. 새로운 '우리'를 재구성할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조심스레 촉구하며 손 내밀어 본다.
[기획칼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 미군 '손가락질'에 여성들은 강제수용소에서 성병진료 받아야 했다
이와 같은 위법한 성병치료가 행해진 데에는, 보건행정의 특성상 기지촌 내 성병관리의 효율 및 엄격성을 기할 의도도 있었겠지만, 이와 함께 앞서 본 대로 위 원고들을 국가안보나 외화 획득에 활용하려는 목적, 즉 외국군들이 기지촌 내 성매매 과정에서 성병에 걸려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사기가 저하되는 현상이 급증하면 이로 인해 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안보 또는 기지촌 주변 성매매의 활성화를 통한 외화 획득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외국군의 성매매 상대방이었던 위안부들의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등한시한 채 기지촌 내 성병의 근절과 감소에만 치중한 데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교수는, 외국군 상대 성매매와 관련성이 없거나 희박한 내국인 상대 성매매집결지에서는 기지촌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던 토벌이나 컨택 등을 통한 성병감염인 조사․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하였는데, 이 또한 위와 같은 위법한 성병 치료행위의 목적․의도를 뒷받침하는 한 가지 사정으로 볼 수 있다.
[기획칼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 "빚때문에 눈치봐야 하는 우리는 스스로 '담요부대'라 불렀어요"
주한미군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키고 유지시킨 물리적 기반이자 절대 규정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도 미군 철수 얘기만 나오면 보수든 진보든 자지러질 듯이 비명을 지른다. 평등한 한미관계는 불가능하다고 아예 못 박은 자들의 대미추종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에 의한 여성인권침해에 대한 기록과 목소리는 깡그리 무시되어 왔고, 그 단적인 예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동두천 시장과 시의회가 합작해서 벌이고 있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의 철거다.
[기획칼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 기지촌 위안부가 '달러벌이 산업역군'? 그들의 비참한 삶엔 침묵한다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는 흉물로 치부하고 철거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무능력과 책임전가로 역사의 비굴함이 그대로 드러난 기지촌에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동두천만의 아픔과 눈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의 아픔과 눈물을 대변한다. 이곳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공인된 방식으로 현장을 보존하거나 기억을 아카이빙 하지 않으면 과거의 기억도 사라질 수가 있다. 개발 논리로 그 기억의 장소를 없애면 그 장소를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파괴는 공동체의 파괴이다.
[뉴스]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지지 ‘관제 데모’ 개입 의혹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던 10월 22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서는 거친 말이 터져나왔다. 이곳에선 과거 ‘미군 위안부’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 촉구 시위가 열렸다. 이 건물은 1970년대부터 96년까지 운영되다 폐쇄됐다. 300명가량의 시위 참가자는 “동두천의 수치”, “성병관리소 철거 지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집회 주최 단체는 ‘성병관리소철거추진시민공동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다. 윤한옥 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이 모임이 여성단체협의회, 동두천애향동지회, 소요산상가번영회 등 40여 개 단체의 연합체라고 말했다.그러나 이 집회는 동두천시가 개입한 ‘관제 데모’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두고 ‘역사 지우기’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동두천시가 철거 찬성 여론을 조성하려고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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